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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트 여행기: 호수 위 작은 동화를 만나다

toto9 2025. 4. 27. 11:05

 

 

블레트 여행기: 호수 위 작은 동화를 만나다

 

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블레트(Bled)에 다녀왔다.
사진으로만 봐도 늘 꿈처럼 아름다웠던 곳. 막상 발을 딛고 나니, 그 풍경은 사진보다 훨씬 더 깊었다.

 

첫인상, 마법 같은 호수

블레트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호수였다.
맑은 물빛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저 멀리 물 위에는 조그만 섬이 떠 있었다.
섬 위엔 작고 고요한 교회 하나. 이곳이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풍경이 고요하게 아름다웠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면 나뭇잎이 사각거리고, 물결이 조용히 흔들렸다.
흐린 겨울 날씨였지만, 어디를 찍어도 엽서가 되는 풍경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슬로베니아 블레트

 

블레트, 시간의 깊이를 걷다

 

지금은 조용한 휴양지로 알려진 블레트지만, 사실 이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특별한 장소였다.
벌써 9세기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곳이 종교적 중심지로 여겨졌다고 한다.
특히 블레트 섬은 슬라브족들의 고대 신앙과 연결된 신성한 장소였고, 후에는 기독교 전파와 함께 성모 승천 교회가 세워졌다.

중세 시대에는 블레트 성이 건설되면서 지역의 중요한 요새이자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본격적인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는 귀족들과 왕족들이 여름 휴가를 보내러 찾아왔고, 20세기 초에는 건강 요양지로도 이름을 알렸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었던 **티토(Tito)**가 이곳에 별장을 마련하면서
블레트는 다시 한 번 ‘특별한 이들의 쉼터’로 떠올랐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이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세계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블레트 성, 시간을 거슬러

 

호수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엔 블레트 성(Bled Castle)이 서 있다.
11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 성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당시 블레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성은 지역 주교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야 했지만, 성벽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호수는 물론이고, 그 너머로 펼쳐진 알프스 산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은 서늘했고, 하늘은 끝없이 높았다.
‘여기가 바로 시간이 멈춘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레트 섬으로

 

호수 가운데 떠 있는 블레트섬(Bled Island)에 가려면 플레트나(Pletna)라는 전통 나무배를 타야 한다.
노를 젓는 뱃사공의 리듬에 맞춰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가까워질수록 섬은 점점 더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섬에 도착해서 작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성모 승천 교회’가 나온다.
교회 안에는 특별한 전설이 있다.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종을 울리지는 못했지만, 마치 종소리가 호수 위에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블레트에서의 하루는 짧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크게 특별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모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조용히, 천천히,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

 

 

 

 

언젠가 다시 블레트에 오게 된다면, 이번에는 하루 이틀 더 머물면서
호숫가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아무 생각 없이 물결만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종을 울려야지. 지금보다 더 크고 다정한 소원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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